들어가기에 앞서,
2021년 6월 19일에 발매된 양홍원의 정규 2집 오보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원래 계획으로는 슬로모가 발매되면 양홍원을 다루고 나서 그의 앨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슬로모가 발매가 안 되고 있어서 오보에를 먼저 다루게 됐다.
양홍원은 오보에를 통해 기존에 잘 알려진 그의 음악 스타일을 탈피해, 새로운 행보를 보여줬다.
들어가기에 앞서 앨범의 제목은 동명의 목관 악기 ‘오보에’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홍원은 가사에서 스스로를 나무(木)에 자주 비유하는데, 앨범의 제목을 목관 악기에서 가져온 것이 생각할 만한 점이다. 또한 오보에의 영어 제목은 ‘Three step forward two step back'이다. 영제가 조금 더 앨범 서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지만, 이 부분은 마지막에 한 번에 설명하겠다.
전체적인 오보에의 테마는 이별과 방황 그리고 성장이다.
1. 실 / Thread(1.11)
1번 트랙 실은 의도적으로 발음을 뭉개어 만들어진 중의적인 표현들이 돋보이는 트랙이다.
양홍원은 1월 11일, 본인의 생일 하루 전날 연인과 이별했다. 본인의 첫 이별을 이 트랙에서 이야기한다.
“흘러가길 1로” - 흘러가길 일로
“포장해 편지를. 예쁜 꽃 가시로” - 포장해 편지를. 예쁜 곳 가시오
“보내는 이이라는 시로” - 보내느니 난 싫어
“사실로 엉킨 실로” - 사실 널 잃긴 싫어
“노를 저어 멀리로” - 너를 저 멀리로
흘러가길 피로, 소년의 빨간 눈보라, Bad, I know I’m bad 등의 가사를 통해 양홍원은 죄를 지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뒤에 ‘내 하루를 내어주고서 받아 생’이라는 가사를 통해 그 죄에 고통받는 시간(속죄)을 가져 결국에 앞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나보다 강한 건 약
괜찮아졌지 오늘 난
괜찮냐고 해줘서 다시
무너져 널 뒤로하고
나보다 강한 건 약이라는 가사를 통해 공황장애, 우울증 등 정신 계열의 병력을 알 수 있고 약에 의존하고 있다. 부작용으로 인해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약을 통해 아프지 않게 살 수 있게 됐지만, 너의 괜찮냐는 물음에 다시 한번 무너진다.
‘소년의 빨간 눈보라’ → ‘봄바람에 흘러가네’
겨울에서 봄으로 시간이 흘렀다.
2. 한시 / 01:00
굉장히 몽환적인 느낌이 강한 트랙이다. 시티팝같은 느낌이고 새벽에 술에 취해 걸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1번 트랙 ‘실’에서 방황의 원인을 다뤘고 그 뒤로 술에 취해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전환점이다.
그래서인지 곡의 길이도 짧고 skit 같은 느낌을 준다.
난 새로워 너의 집이 생긴 게
미안해 갈 곳이 없어 한시에는
취한 채로 들리는 게 아닌데
너랑은 하고 싶어서 아쉽게
곧 자야 하는 눈을 안 가린 채로
너 혼자 누워서 채운 침대에
겨우 사랑한다고 말하고 가기엔
난 가야 할 이유가 없지
1월 11일 새벽 1시, 생일 전날 술에 취해 전여친을 잊지 못한 채 다른 여자들과 밤을 보낸다.
3. 낮에 / en plein jour
반복되는 기타 리프가 중독성이 있어서 즐겨들었다.
책상엔 색깔별로
…
Pop another drugs different color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겪고 여러 종류의 약을 먹고 있다.
걱정이 많아서 고민
어차피 고민만 하니
차라리 더 취해 Don’t trip
…
어제인가 모레인가 헷갈려
여태 난 왜 셌나 이런 걸
걱정이 너무 많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기에 양홍원은 술을 계속 마신다.
날짜 개념조차 사라졌다, 연애를 하며 날짜를 세 왔지만 헤어지고 나서 전혀 의미가 없어졌다.
밤이 짧아서 안 졸려 (새벽)
Sun comes up 괴로워 (아침)
밤이 오니 그럼 한 알 더 (밤)
1월 11일, 이별은 고통스럽고 밤낮없이 외롭기에 오늘도 친구들을 부르고 술과 약을 먹는다.
이 시간에만 너를 원해
…
희미해져 밤이 되면 연기해야지
외로운 밤이 싫어서 여자를 만나면서 우울감을 해소하려고 한다. 마음에도 없는 여자를 사랑하는 척 (연기)하고 나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넌 아니 나의 원래 목소리 목이 다 해서 갈려
내 안에 아이 다시 보여서
I can’t be sober
‘실’의 가사처럼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결국 자신마저 자신의 모습(목소리)를 잊어버렸다.
나무, 가면을 의미하는 목과 자신의 목(성대)이 다 갈렸다.
더 이상 가면을 쓰고 원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를 내는 것에 한계가 왔다. 이제는 내 안의 어린아이가 다시 보여서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
밤이 짧아서 안 졸려
여름은 밤이 짧다.
4. 아직 / ,yet
이 트랙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앨범의 분위기가 변한다. 가사가 너무 슬펐다. 양홍원의 가장 어두운, 우울한 부분이 아닐까.
이 트랙부터는 양홍원의 꿈속으로 들어간다.
아직 못 가 난 집에
또 쌓이지 엄마의 문자
…
미안해 도망쳐서 누나
남아 내 실수가
1월 12일 애인과 헤어진 후로 술과 약에 의존한 양홍원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엄마의 걱정에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여자들과의 관계는 죄책감을 남겨, 양홍원의 ‘실수’가 됐다.
거짓말해 줘 나한테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난 방 안에만 있어
밖에는 인간이 너무 많잖아
난 질려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양홍원에게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실수, 죄책감) 사람을 피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5. 탈 / trouble
양홍원의 싱글 The End와 비슷한 락 같은 사운드가 사용되어 상당히 청각적으로 좋게 들었다.
가면이 완성되겠지
가려줘 우리 탈을
넌 헷갈려하네 이제 가려하네
이제야 다행히
탈은 앞에서도 계속 언급한 가면이다. 자신의 아이 같은 모습을 가려왔다.
전 애인은 연인관계에서도 양홍원은 가면을 쓰고 있다고 의심해서 헤어지게 됐다.
(우리 탈을 넌 헷갈려하네)
우린 지저분해
못 치워 덧칠해서는
흔적이겠지 이건
…
억지로 날 더 태워서
연기로 가릴게
전 애인과 자신의 과거는 덮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더 크게 엇나가 더 큰 잘못을 저질러 과거를 덮겠다는 의미(smoke)와 과거를 잊은 척 연기(acting)하겠다는 의미가 둘 다 있다.
3개의 방이 전부 다 비어있네
많은 여자와 잤지만 사랑을 하지는 못했다. (집 = 사랑)
왔네 가을이 다시 입이 터
가을이 됐다.
6. 하긴 / well,
오보에 수록곡 중에 유일하게 내 기분을 해치지 않는 트랙이다. 다른 곡들에 비해 경쾌한(?) 분위기다.
이 시간에 뭐하긴 더 취해
좋지만은 않아 기분이
…
사랑하기로 해 한 시간만
무슨 말인가 하면서도 더 해
…
지워 내 안에 아이
기억이 안 나 어디야 여긴
내 안에 ‘아이’를 지우기 위해 여자들과 관계를 가진다.
쾌락에 의존하지만, 기준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7. 0001
이 곡을 기점으로 앨범은 다시 한 번 분위기를 전환한다.
같은 플로우가 반복되는 단조로운 곡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잘 만들어 양홍원의 플로우 짜는 능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꿈이니까 꿈이지 병신아
…
버리고 가 내 침대 위 new hoe
…
아직 남아있는 현실을 피해
아침에 취해 술로 안 취해
…
제정신에도 이제 난 웃어
방탕하게 사는 거 그거 다 꿈이라고 자신에게 말하며 더 이상 쾌락에 의존하지 않고, 술과 약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거꾸로 가려해 like moonwalk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꿈에서 1월 14일까지 보낸 양홍원은 방황을 끝내고 현실의 시간(1월 12일)으로 돌아간다.
밤이 내 예상보다 더 기네
삶이 내 예산보다 더 기네
빛처럼 빠른 시간을 잊게 해줘
눈이 멀겠어 이른 햇빛에
힘들고, 어두운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빠르게 지나간 쾌락에 빠져있던 시간을 넘어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밤이 내 예상보다 더 기네
겨울에는 밤이 길다.
8. 가면무도회 / ARIA
평소 락 음악을 즐겨들어서 그런지 락 세션을 좋게 들은 트랙이다. 베이스 소리가 인상깊었다.
나 혼자 가면무도회
난 누굴 위해서 나였던 건지
…
잠에서 깨면 새로운 내가 거울에
이제야 이래도 아이처럼 생겼네
이런 내가 되려 일부러 죽였나 해도
돌아갈 곳이 없어
잊었지 내 집이 어딘지
힘이 없지, pills poppin’
꿈에서의 방황을 마친 양홍원은 쓰던 가면을 탈피한다.
가면을 쓰고 펼치던 연기를 마치고 자신의 본모습, ‘아이’를 들어낸다.
‘정말 내가 이런 모습(아이)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가면을 벗은 뒤라 돌이킬 수 없다.
도피성 쾌락에서 벗어나 새로워졌지만, 여전히 내가 돌아갈 곳(집 = 사랑)은 어디인지, 무엇을 위해 가면을 쓰고 연기했던 것인지, 가면을 벗은 게 옳은 선택인지 고민에 빠져 결국 다시 약을 찾는다.
9. 사계 / 4 Seasons(1.12)
타이틀 곡이다. 양홍원의 앞으로 음악적인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덕션이 굉장히 잘 된 음악을 꼽을 때 이 곡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앞에서의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고 방황을 끝낸 양홍원의 인간적인 성장 서사를 볼 수 있는 내용으로 곡 분위기도 그렇게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
하루 같아 내 삼일 밤은 공황을 닮아
3일의 시간을 보낸 11일 밤에서 12일 아침까지 꾼 꿈을 의미한다.
맴돌아 제자리를 시계같이
바늘 같아 이 관계는
찢어져서 꿰매어도 따갑네
원하지 않아도 맞닿는 시간
3개의 숫자가 다 같네
1초만 널 미워하지 않을래
아이처럼 내가 먼저 안을래
운명 같게 해 timing
나, 전 애인, (내 안의) 아이를 시침, 분침, 초침에 빗대어 시계처럼 제자리를 돈다고 표현했다.
시침과 분침, 초침이 일치하는 시간은 12시 정각밖에 없다. 세 개가 마주하는 운명 같은 타이밍인 1만이라도 가면 없는 내 안의 아이를 인정하고 아이가 된 채로 전 애인을 안겠다(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맴돌아 제자리를 시계같이
…
다시 와주는 건 오직 사계
이 상황이 결국에는 반복될 것을 알고 있다.
나무같아 내 버팀은
목에서 언급한 것 처럼 자신을 태워서 잘못을 연기로 가리고, 나무를 가면으로 만들어 힘든 시간을 버텼다.
억지로 안 잘래 생일엔
초에 불을 하나씩
불신이라는 꽃을 피우네
향이 나게 해 껍질은
차를 달이길 30에는
1월 12일, 생일을 맞이해 한 살을 더 먹고, 방황을 마치며 양홍원은 한 계단 성장했다. 더 이상 약에 의존하지 않고 불면증(있는 그대로의 자신)마저 받아들이고 촛불은 인간관계에서 불화처럼 보이지만 나무(나, 가면)를 태워 나온 연기는 향기(추억)가 됐다.
30살에는 더 성장해 꽃(불화)으로 차를 달였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바늘 같아 이 관계는 / 1번 트랙 실(실과 바늘)
운명 같게 해 Timing / 2번 트랙 한시(한순간)
약이랑 눈이 부시네 / 3번 트랙에서 언급된 여러 종류 약들
다시 하기 전에 배신해 / 4번 트랙에서 남은 배신감(거짓말해 줘 나한테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나무 같아 내 버팀은 / 5번 트랙, 양홍원을 나무에 비유
1초만 널 미워하지 않을래 / 6번 트랙 사랑하기로 해 한 시간만
약이랑 눈이 부시네 / 7번 트랙, 약이랑 눈이 부신 아침에
간절히 원한 가면이네 / 8번 트랙 가면무도회
정리
오보에의 영어 제목은 ‘3 steps forward 2 steps back’으로 3보 전진 2보 후퇴라는 뜻이다.
11일 밤부터 14일까지 3일의 시간을 꿈에서 보내고 0001에서 2일을 돌아와 마지막 곡 사계에서 자신 안의 아이와 전 애인(이별)을 받아들이고 마음속으로 1보 성장한 양홍원을 의미한다. 또, 사계에서 생일을 맞이해 한 살을 더 먹게 된 의미도 있을 것이다.
트랙 제목을 영어로 보면 아직, 탈, 하긴이 ,yet trouble well, 로 콤마 안에 담겨있는데 이것이 꿈을 구분하는 포인트다.
실 | 한시 | 낮에 | 아직 | 탈 | 하긴 | 0001 | 가면무도회 | 사계 |
1월 11일 새벽 | 1월 11일 새벽 | 11일 밤까지 | 꿈 내용 시작, 12일 | 13일 | 14일 | 꿈에서 깨기 시작 | 12일 새벽 | 12일 |
홀수 트랙에서는 계절을 나타냈고 이는 계절의 흐름, 즉 반복될 것을 나타낸다.
(실제로 양홍원은 재결합해서 잘 사귀고 있다는 점이 재밌는 포인트이다.)
마치며
사실 이번 글을 쓰면서 정말 많은 글을 참고했다. 내 지식이 짧아서일 수도 있고, 틀리기 싫어서일 수도 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참고하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담아낼 수 있던 것 같다.
앨범이 발매됐을 당시에는 양홍원에게 씨잼 병 걸렸다는 소리도 있었기도 하고 호불호가 꽤 갈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2024년 슬로모 발매를 ‘아직도’ 앞둔 시점(ㅋㅋ)에서 25 피처링, 합작앨범 L&B, Citi+, ROLEX, Jealousyvalhalla를 통해 대중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아졌다. 현재는 씬에서 가장 뜨거운 사람이 됐다.
오보에는 음악적, 가사 측면에서 양홍원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 시발점이었다. 사운드도 출중하고 가사도 해석할 여지가 많은 재밌는 가사라고 생각해 국내 힙합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생 앨범인데, 많은 사람에게 저평가된 부분이 상당히 아쉽게 다가온다.
앨범의 유기성 또한 뛰어나다. 저스디스의 2mh41k를 듣고 느꼈던, 앨범 구성의 정석을 본 느낌이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 스토리 구성이 뛰어나다.
양홍원에게 완전 관심이 없었지만, 오보에를 접하고 나서 팬이 됐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 들려줬으면 좋겠다.
슬로모 빨리 내라 진짜
참고자료
@tyranno_dj, 양홍원도 모를 오보에 해석
https://www.instagram.com/tyranno_dj/p/C2uBTdZupaj/?img_index=10
Instagram의 티라노님 : "추가질문 댓글 ㄱ 이거 무슨뜻이에요 이런거 #양홍원 #오보에 #가사해석 #
4,409 likes, 88 comments - tyranno_dj - January 30, 2024: "추가질문 댓글 ㄱ 이거 무슨뜻이에요 이런거 #양홍원 #오보에 #가사해석 #명반 #합합 #국힙"
www.instagram.com
교, 양홍원 - 「오보에」 리뷰 및 해석
https://blog.naver.com/oinkyo12/222741330602
양홍원 - 「오보에」 리뷰 및 해석
지금부터 1년이 좀 안 되었을 때 양홍원은 정규 1집 「 Stranger 」 에 이어 21 . 06 . 19일에 정규 2집 ...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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